전방 압박을 가장 잘하는 팀은 어디인가? (하이 턴 오버 & 수직성 공격: 본머스)
'프리미어리그에서 압박을 가장 잘하는 팀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팬들은 리버풀과 토트넘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이 팀들의 압박이 리그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압박의 '강도'나 '빈도'가 아닌, 그것을 실제 '득점'으로 연결하는 '효율성'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로 평가한다면 순위는 어떻게 바뀔까?
2024-25 시즌 데이터는 우리에게 의외의 답을 제시한다.
바로 안도니 이라올라 감독의 AFC 본머스다.
이 글은 본머스의 강력한 압박 축구가 어떻게 리그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게 되었는지 분석해 본다.
데이터로 증명된 효율성
전방 압박의 효율성은 '하이턴오버 후 득점'이라는 데이터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증명된다.
그리고 2024-25 시즌, 이 지표의 확실한 1위 팀은 AFC 본머스였다.
[2024-25 프리미어리그 '하이턴오버' 팀별 순위 테이블]
*PPDA는 수치가 낮을수록 압박 강도가 강함을 의미합니다. (출처: Opta, FBref.com)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AFC 본머스는 '하이턴오버 후 득점'과 '하이턴오버 후 슈팅' 횟수 모두에서 리그 단독 1위를 차지하며,
압박의 최종 결과물인 '득점 효율성'에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24/25시즌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까지의 데이터(출처: Opta Data)
하이턴오버(High Turnover)란?
상대 진영 높은 곳(일반적으로 상대 골문으로부터 40m 이내 지역)에서 공격권을 되찾아오는 플레이를 의미하는 공식 데이터 지표입니다.
본머스 감독 이라올라의 철학: 혼돈과 수직성
(출처: FOOTBALL ESPANA)
(통제와 혼돈의 구분)
‘안정적인 통제 대신 의도적인 '혼돈'을 유발하고,
그 속에서 가장 빠르고 수직적인 공격으로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는 축구.’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2023-24 시즌에 부임하여 팀을 완전히 바꿔놓은 안도니 이라올라 감독이 있다.
그의 확고한 철학은 다음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된다.
원칙 1: '강력한 전방 압박'
이라올라 감독은 압박이 수비의 시작이 아닌, 공격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우리는 용감한 팀이 되고 싶습니다. 소유권이 없을 때, 우리는 매우 공격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공을 되찾기 위해 높은 지역에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Sky Sports 인터뷰 중)
"저는 선수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압박 상황에서 실수는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공을 잃는 즉시, 되찾아오기 위해 달려들어야 합니다." (The Athletic 인터뷰 중)
이 말들은 그의 팀이 왜 그렇게 강도 높은 PPDA를 기록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그에게 압박은 단순히 공을 되찾는 행위를 넘어, 팀의 정체성이자 상대방을 혼돈에 빠뜨리는 첫 번째 단계인 것이다.
*PPDA는 수치가 낮을수록 압박 강도가 강함을 의미합니다.
왼쪽으로 치우쳐 있고 높게 위치해 있을 수록 공격 국면시 단순한 전개로 마무리 짓는 팀을 이야기 한다.(출처: Opta Data)
원칙 2: '극단적인 수직성'
그는 점유율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소유권의 목적은 오직 '전진'과 '공격'임을 분명히 한다.
"저는 목적 없는 점유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50번의 패스를 주고받는 것보다, 단 3번의 패스로 상대 박스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최대한 많은 선수를 데리고 상대 박스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라요 바예카노 시절 기자회견 중)
"공을 탈취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전진'입니다. 안전한 패스를 찾기보다, 상대의 빈틈을 향해 즉시 공격해야 합니다. 그 순간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The Coaches' Voice 인터뷰 중)
이는 본머스가 왜 하이턴오버 이후 가장 많은 슈팅을 기록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는 선수들에게 공을 뺏는 순간, 안정적인 재정비가 아닌 즉각적이고 수직적인 공격을 DNA처럼 심어놓았다.
원칙 3: '리스크 감수'와 '선수들의 헌신'
이라올라 감독은 자신의 전술이 높은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한 선수들의 100% 헌신을 요구한다.
"우리는 높은 수비 라인을 유지합니다. 물론 뒷공간에 대한 리스크가 있지만, 그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전방 압박을 할 수 있습니다. 이득이 리스크보다 더 큽니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인터뷰 중)
"우리의 플레이 방식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신체적 노력을 요구합니다. 선수들은 스스로에게 매우 혹독해야 합니다. 훈련장에서부터 그러한 강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우리의 축구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 (Bournemouth Echo 인터뷰 중)
이러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이전 시즌 강등권 경쟁을 하던 본머스를 단숨에 프리미어리그의 중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인상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전술적 특징: '조직적인 혼돈'을 만드는 방법
이라올라의 축구는 겉보기엔 무질서하고 모든 선수가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선수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역할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압박부터 공격 전환까지, 주요 전술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전방 압박 시 윙어와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
1. '안쪽부터 바깥으로' 수비하는 윙어
윙어의 수비 원칙은 '중앙을 먼저 방어하는 것'입니다.
중앙을 단단히 한 뒤, 공이 측면으로 전개되는 순간 해당 지역의 윙어가 빠르게 튀어 나가 풀백을 압박합니다.
이때 반대편 윙어는 오히려 중앙으로 더 좁혀 들어와 상대의 직접적인 반대 전환 패스 길목을 차단하며 중앙의 수적 우위를 유지합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기초 포지셔닝)
(수비형 미드필더의 전진압박)
(수비형 미드필더의 공격수 패스 길목 차단)
2. 유연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
수비형 미드필더는 이 모든 압박의 '컨트롤 타워'로서, 전방의 압박 라인과 후방의 수비 라인 사이의 핵심 공간을 통제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조절합니다.
상대 미드필더에게 패스가 향하면 과감하게 전진하여 압박하고, 상대 공격수가 내려오면 패스 길을 미리 차단하는 등 상황에 맞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B. 압박 시퀀스
1. 골키퍼 빌드업에 대한 연계 압박
상대 골키퍼가 공을 잡는 순간부터 두 명의 공격수가 약속된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채널링 역할: 한 명은 골키퍼에게 접근하여 전개 방향을 한쪽으로 강제합니다.
채널링(Channeling)이란?
수비팀이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공격 방향을 자신들이 원하는 특정 구역으로 유도하거나 몰아넣는 조직적인 수비 방식을 의미합니다.
커버 섀도우 역할: 다른 한 명은 중앙의 상대 피봇(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가는 패스 길을 몸으로 막으면서, 골키퍼의 패스를 받은 센터백을 압박하여 전진을 제한합니다.
커버 섀도우(Cover Shadow)란?
커버 섀도우란, 압박을 하는 선수가 공을 가진 상대에게 접근할 때, 자신의 몸을 이용해 그 선수 뒤에 있는 다른 상대 선수에게 향하는 패스 길을 가려버리는 지능적인 수비 기술을 의미합니다.
2. 측면 전개 시 최전방 공격수의 압박 역할: 백패스 유도
상대 공격이 한쪽 측면으로 집중될 때, 최전방 공격수는 공이 있는 반대편 센터백으로 향하는 패스 길을 먼저 막아섭니다.
이 움직임은 상대 수비진의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제한하여, 가장 안전해 보이는 선택지인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백패스를 '압박 트리거'로 삼아 골키퍼에게 빠르게 달려듭니다.
이 압박의 최종 목표는 우리가 예측하고 있는 위험한 지역으로 공을 보내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3. 중앙 지역에서의 '압박 함정(Pressing Trap)'
이라올라의 팀은 중앙 지역을 의도적인 '함정'으로 활용하는데, 이는 상대 골문까지의 최단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상대가 중앙으로 패스하도록 유도한 뒤, 미드필더가 즉시 강하게 압박하여 볼을 받은 선수가 등을 지게 만듭니다.
이때 상대의 터치가 불안정해지거나 뒤로 흐르는 순간, 뒤에서 추격하던 공격수가 그 공을 가로채 가장 위협적인 위치에서 공격을 시작합니다.
C. 공격 전환 단계: 수직적 돌파와 연속 공격
볼 탈취 후에는 모든 선수가 약속된 공격 역할을 수행합니다.
1. 볼 탈취자 (수직적 드리블)
안전한 패스보다 직접 상대 골대를 향해 빠른 '수직적 드리블'을 시도하여 수적 우위를 만들고 수비 대형을 파괴합니다.
(레스트 디펜스)
(2차 공격)
2. 후방 그룹 ('레스트 디펜스' 및 2차 공격)
첫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은 즉시 라인을 높게 끌어올려, 공격이 실패하여 흘러나올 '세컨드 볼'을 다시 확보할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세컨드 볼을 다시 따내면, 그 순간 라인을 올렸던 미드필더 한두 명이 추가로 박스 안으로 침투하여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2차 공격으로 득점을 노립니다.
결론
2024-25 시즌 본머스의 사례는 '최고의 압박'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단순히 많이 뛰고 강하게 압박하는 것을 넘어, 그 모든 노력을 어떻게 가장 가치 있는 결과물인 '득점'으로 치환하는지가 진정한 강팀의 조건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안도니 이라올라 감독의 '혼돈과 수직성'이라는 명확한 철학,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세부 전술과 선수들의 헌신이 어우러져, 본머스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치명적인 압박 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들의 성공은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만큼 '압박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현대 축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